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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첫 기억

90' 2022. 12. 22. 10:47

목포의 첫 기억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사거리 횡단보도 건너는 곳에 큰 개가 있었는데 처음엔 산책견인줄 알았지만 목줄이 없었다. 내가 도착도 하기 전에 초록불이 켜졌고 똑똑한 개는 초록불이 들어오자 길을 건넜다. 나는 그 개를 따라갔는데 빨간불이 들어오자 그 개는 도로에 있다가 다행히 도보로 올라갔다. 112에 신고하고 기다리는데 벌써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줄은 없었어도 목에 목줄은 있었고 유기견으로 보였다.

한국같이 동물권에 박한 나라에서, 그리고 목포는 처음 와본 곳인데 왠지 서울보다 이런 신고에 무디지 않을까 우려까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너무 답답했다. 개는 공격성은 없었지만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차도로 나갔는데 혹시라도 차에 치일까 손으로 방어를 했지만 차도 한복판까지 나가 정말 위험했다. 목포역 사거리에는 다행히 다들 저속운전을 하시고 다 살펴가셔서 '그' 개는 내 눈앞에서'는' 치이지 않았다. 서울같이 무심히 쌩쌩 달리는 곳이었으면 큰 확률로 이미 그 자리에서 개는 치였을 것이다.

신고하고 몇분이 되지 않아 경찰차와 소방차가 도착했고 구조를 시작하셨다. 그물을 든 분은 그다지 적극적이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었고 감사했다. 개가 도망가자 반장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개가 도망가니 양쪽에서 다가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얼른 편의점에서 사온 군고구마를 드리며 개가 좋아하는 냄새여서 유인하는데 도움이 될까 전해드렸다. 조심히 개를 잡으면 어디로 가나요? 라고 여쭸더니 유기견센터로 간다고 하셨다.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는 그렇게 나는 그 곳을 지나쳐왔다. 원래 노래를 들으며 오랜만에 홀로 백팩매고 온 여행을 느끼고자 했지만 눈물이 나왔다.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도 지방에 묶여있는 1m 개들이라거나 그런걸 보면 어떻게 할지 걱정을 했었다. 예전에는 하지 않던 우려였다. 하지만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니까 있다면 내 눈으로 봐야지 했다. 결국 여행의 시작과 동시에 한 현실을 마주했는데 그건 내가 못본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어디에서 동물들이 죽어나갈까, 상상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죽어나가고 있고 난 그걸 견디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사람이라면 신고를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텐데 개여서 걱정했고 눈치가 보였고 실제로 죄송하기도 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구조를 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전화도 두번이나 주시며 지금 개를 찾지 못했으나 더 찾아보고 안되면.. 다시 신고해주시면 찾아보도록 하겠다는, 그들 나름의 최선의 말씀도 해주셨기에 감사하다. 눈물이 났던 건 내가 이렇게 신고하고도 사람들의 대처가 안일할까봐 나 스스로 상처받을 것 같았는데 나름 안도가 되었고 이건 고작 나만의 안위이고 동물의 고통들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이 너무 예쁘게 내린다. 겨울 여행에 마침 적당히 눈까지 오고 예전 같으면 너무 행복하기만 했을 거다. 예전에는 겨울의 아련함을 참 좋아했는데 동물을 알게 되고 나서 동물에게 혹독한 계절임을 알고 겨울을 좋아하는 순간이 한편 미안하고 죄책감도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즐길 거다. 앞으로도 즐길 거고, 동물권 후원도 계속 물가상승률 비례 이상으로 증액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