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부:리뷰·창작비평·비교/9_역사유물론 13

삶의 의지들로 치열했던 과거를 다시 복기하고 기억하라.

태어나 사랑을 했다면 죽은 이는 누구나 또 다른 죽은 이의 기억 속에서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아팠었다. 스코틀랜드 민요가 원곡이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그 시절 그 풍경을 떠올리게끔 만든다. 모든 떠나간 이와, 지난 시간 속에서만큼은 영원히 아름다울 빛났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희망이 없다면 미래보다는, 삶의 의지들로 치열했던 과거를 다시 복기하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더군다나 오일팔이라면. 그리고 모든 재발의 방지는, 사건의 진상 규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Black Is The Color" Black is the color of my true love's hair; Her lips are like some roses fair; She..

인간은 신념이나 강요되는 체계 집단 속에서 잔인한 짓을 저지른다.

일본 현대사 시험을 앞두고 이것저것 잘 모르겠는 것들은 시각적인 자료 (구글링 이미지 검색 등)나 글들을 읽어보고 있다.중일전쟁 (37년)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고화질 사진이 굉장히 많다. 일본, 중국 국민당, 소련군 등의 사진들... 확실히 사진으로 보니까 더 현실적으로 와닿게 된다. 이는 중일전쟁 당시의 일본군들이다. 해맑게 웃고 있고 인상도 좋다. 그냥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넘어지면 괜찮냐고 물어볼 것 같은 인상들이다. 인간이란 참 무서운 존재다.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체계나, 불가항력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혹은 강요되는 체계 속에서, 특히 집단 속에서 개인은 잔인한 짓을 저지른다. 나는 지금 우리 사건에서 무조건적인 "피해자중심주의"를 ..

30년대 일본의 국가주의 - 전문가와 지식인들도 사리판별을 하지 못함

마루야마 마사오는 패전 직후 "과거 서양의 생활양식을 재빨리 흡수하고 서구의 전통에 밝았던 지식인들조차도 그토록 파멸적인 전쟁 속으로 왜 그렇게 무력하게 질질 끌려갔을까? 아니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라고 한탄했다.전문가와 지식인들조차도 사리판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의 1930년대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에 대한 광기의 시대였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역사는 인류에 흔하다. 여기에서는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나 조직이나 운동권이나 비운동권이나 그 어떤 사람과 조직도 해당될 수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일본의 1930년대의 경우 국가주의는 현실의 모순을 증폭하고 진실을 호도하여 전쟁을 옹호했다. 일본 국가주의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상징과 명분은 천황(국체)였다. 지..

만주사변 - 인간은 원래 다른 사람의 죽음을 관음하며 즐겨

1931년 만주사변. 사람들은 당시 만주사변에 열광했다. 세계대공황 이후, 급속히 악화된 경제에서 내셔널리즘의 광풍이 불었고, 천황기관설이나 정당정치 역시 약화된 상황에서 만주사변이 발발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팍팍한 삶에 대한 광기를 만주사변에 대해 호응했다. 이후 혈맹단도 나오고 점차 정당정치가 지고 군부세력이 올라오게 된다. 사람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언제나처럼 여론에 선동당하고 자극적인 것에 함께 광기하며 동조하고.

조선인 B/C급 전범자들에 대한 동질감

조선인 B/C급 전범 재판에서 죽은 조선인 20명,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책이 있다고 한다. 잠시 권혁태 선생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은 싱가폴에서 사형집행을 당했고, 나머지는 일본인으로서 재판받고 수감당했다. 하지만 막상 석방될 즈음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일본인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들은 대게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한국에서 징발되어 동남아에서 그 일을 한 것 뿐 일본과는 관련이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전범이니 받아주지 않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아니니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적으로 떠밀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들의 실수가 있긴 하였겠지만 나는 ..

메이지유신, 천년만에 천황이 교토로 입성하는 순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26081&cid=42998&categoryId=42998&expCategoryId=42998 사진이 하나 있다. 메이지 천황이 천 년간 기거하던 교토를 떠나 도쿄로 입성하는 장면. 일본의 수도는 천황이 기거하는 곳이며, 메이지 시대부터 비로소 도쿄는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2-30대가 주도한 메이지 유신. 비록 존왕양이에서 바로 개국으로 바꾸긴 했지만, 어찌보면 그것이 더 대단하다. 한번 깨지고, 현실적인 방법을 취해서 큰 일을 해내는 것. 적응능력과 현실적인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이 천황을 부른 것에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지금 현실로 보면 전근대의 정신적 지주를 다시 복원시켰다는 것에 ..

역사논쟁에 관한 의견충돌에 관해

굳이 말하자면, 저는 둘 다를 이해하고, 또한 저는 그 둘 다에 반대합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은 '중립' 따위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중립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제가 둘 다를 이해하고 둘 다에 반대하는 이유는, 둘 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었으며 인문과 사회를 논하기에는 기본 자격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지난 역사에 대해 진상을 파헤치며 운동하는 평화활동가들을 압니다. 저는 일본에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무나 착한 친구들을 압니다. 국가에 대해서 반대하는 좋은 사람들도, 찬성하는 좋은 사람들도 압니다. 그 반대도 압니다. 또한 한국에서도 민간 단위로 해외협력을 하며 희생하시는 분들을 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