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잔챙이 5

들뢰즈의 강제된 사유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0910 '누가' 진실을 찾는가? 그리고 '나는 진실을 원한다'라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프루스트는 인간이란, 설령 순수하다고 가정된 정신이라 할지라도, 참된 것에 대한 욕망, 진실에 대한 의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리고 우리를 이 진실 찾기로 몰고 가는 어떤 폭력을 겪을 때만 우리는 진실을 찾아 나선다. 누가 진실을 찾는가? 바로 애인의 거짓말 때문에 고통 받는 질투에 빠진 남자이다. 사유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에게 주어지는 폭력이고 외부의 침입처럼 강제적이다.

내가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

지그만트 바우만의 책을 자주 읽었다. 죽음은 내가 배운 것을 모두 취소시킨다. 일생일대의 삶 앞에서 나는 의무감을 절실히 느꼈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까닭은 삶에 대한 의지였다. 나는 사랑해야했고 느껴야했고 배우고 도전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져버리는 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도의적으로 사과하고,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라면 차라리 버리는게 나았다. 나는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했고. 웃을 자유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

와 지금 내가 제일 읽고 싶은 바우만의 두 책. 유동하는 공포는 품절되어서 주문할 수 없었다. 액체근대는 원서로 주문하려했는데 30일에 출고된다길래 기다리기 싫어서 한국어판으로 주문했다. 일단 는 내 문제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침범해버렸다는 부분에서 무릎을 탁 쳤다. 정말 좋은 문제의식이고 내가 느껴왔던 부당함이었다. 역시 평생을 걸려 이 문제의식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창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이러한 책들도 부지런히 읽어야겠지? (중간에 을 읽으니 트위터에 대한 곳에서 생각이 멈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마땅한 대안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를 읽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그렇다. 어제도 느꼈지만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중하고 이것이 무엇과..

벤야민을 내가 선택하며.

1.벤야민을 덕질하면서 그 이어질 학자들: 벤야민, 아감벤, 데리다, 하이데거, 브레히트, 카프카, 보들레르, 니체, 맑스, 푸코, 프란츠파농, 프롬, 프랑크푸르트학파, 까뮈, 바울 및 신약성서, 벨훅스. 문학에서는 카프카와 보들레르, 브레히트를 많이 참고할 것 같다. 2.벤야민 덕질이 좋은 것은, 그가 우선 비평가라는 것이다. 내 관심사로도 문학철학역사미학정치를 잇는 플랫폼(?) 허브(?)로서 벤야민은 하나를 팔 학자를 정할 때에 좋은 선택지이다. 3.잊혀졌던, 혹은 기록되지 않은 그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에서 복구하는 것이 벤야민, 그리고 나의 몫이다.난 역사가 진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차라리 과거 속의 이야기를 복원시키는 것이 낫다. 이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가? 끝없는 음악적 영감....역사,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