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부:리뷰·창작비평·비교/29_종교 11

두봉 주교님

https://www.youtube.com/watch?v=KEi5Bg5RhVg 우연히 유튜브 보다가 유퀴즈의 두봉 주교님 편을 보고 엄청 울었네. 94세가 되신 주교님이 "어느새 이렇게 그냥 나이들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시는데 정말 그렇다. 나도 어느새 그렇게 나이들거다. 그때 후회없으려면,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마음을 좋게 먹고, 가까운 사람에게 소중히 대하고, 인류애와 동물애를 가지고,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고... 그럼 되겠지. 그리고 '무신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천주교를 가지고 있고 무신론자에 가깝다. 굳이 무신론 어쩌고 하지 않는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입을 터는 꼴같지도 않은 태도가 싫어서다. 나는 신이 있다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살상이 일어날리 없고, 그런 신이..

기독교가 이모양이 된 이유와 보편성의 필요

1. 김은규 교수가 말했듯이, 원래의 기독교가 아니라, 콘스탄틴이 기독교 이념을 이용해 세계를 재패하고 살육전을 벌이면서. -> 보편성 필요 2. 바울을 잘못 해석해서 (보편적이 아닌) -> 보편성 필요 3. 중세에 교회가 조직 및 제도와 동일시되면서, 교회라는 조직 밖에 있는 이들이 신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한다는 해석이 등장하면서, 자기중심주의가 급속히 확대되어온 것. -> 보편성 필요

최근 내 종교에 관하여.

요즘 종교에 관심이 많다. 히브리즘적인 헌신의 신앙이라기보다는, 지적인 호기심이 더 크다. 가톨릭에서 견진성사를 받고, 만약에 정말 이 뜻대로 산다면 프란시스코회(평신도로서)가 되고 싶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첫째로는 매주 안식일인 주일에도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나일롱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개신교에 관한 관심때문이다. 즉, 매주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고 했을 때 그것이 가톨릭 교회가 아니라 개신교 교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내 종교관이 자리잡지 않았다. 우선은 섬돌이나 명동 향린교회, 낙산교회(김희헌목사) 등에 가봐서 어떤지 느끼고 싶다. 그저 언제쯤 가보면 좋겠다에서 좀 더 적극적인 의지로 바뀐 계기는 천주교 용어로는 '공소'에 대해서다. 가톨릭은 보편교회인 만큼 평신..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6. 신약성경 정경목록

1세기 중반부터 신약성경이 생겨나기 시작함. 최초의 신약성경은 테살로니카 전서. 50-51년 경, 바오로 사도가 씀. 그 후에 복음서들이 쓰임. 마르코 복음 70년 경, 루카 마태오 복음은 8-90년 경. 그러니까 복음서보다 바오로 사도의 친필 편지가 먼저 쓰임.1세기 말에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봉독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간단히 해설한 것이 주일 미사의 강론이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특별히 존중받은 이유는 구약성서는 간접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반면,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는 예수를 직접 증언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성경은 유다인들이 사용하고 초대 교회가 사용하던 구약 성경과 차츰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1세기 후반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9. 성서의 장절 표시, 셀라

원래 성경이 처음부터 장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엔 없었고 책 이름만 있었다. 12세기에 처음 성서의 장을 구분한 사람은 켄터버리의 렌턴 대주교다. 렌턴 주교는 라틴어 불가타 성서에 장 표시만 했었다. 그 다음 히브리어 장표시는 더 나중에 이뤄졌다. 15세기 라탄이라는 사람이 히브리어 성경에 장 표시를 했다.절 표시는 더 후대에 이루어졌다. 프랑스 빠리의 인쇄업자 에티엔느가 1551년 신약성서에 처음으로 장절 표시를 했다. 빠리에서 리옹으로 여행을 가던 중에 이미 구분되었던 신약의 장에 절표시를 했다고 한다. 1558년 불가타 성서에 장과 절을 표시한 성서가 처음으로 출판됨. 예를 들면 시편 50편을 볼 때 괄호 안의 49는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장표시다. 그리고 '셀라'는 잠시 쉬었다 숨을 고르고..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8. 주요 성서 텍스트

1. 히브리어 마소라 텍스트, TM기원 후 70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티토 장군, 후에 로마제국의 왕이 됨) 이스라엘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성전의 주축으로서 썼던 벽만 남겨두었다. 그것이 현재의 통곡의 벽. 로마에 항거하는 민족들은 다 이렇게 파괴당할 것이라는 듯으로 남겨둔 벽. 그 때 예루살렘의 성전들이 파괴되고 사제직도 없어지고, 말씀 뿐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학자들, 성서학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을 유지해나간다. 성서학자들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서쪽에서 성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동안의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기록하고 전해오는 성서 사본들을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은 갈릴레아 호숫가의 도시 티베리아로 옮겨가서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티베리아 학..

시복식 미사에서도 축복받았다

1.하느님 감사합니다.서울에 태어난 까닭에 독립해도 부모님과 가까이 살 수 있고,부모님은 물론 우리 할머니까지 같은 동네에 살 수 있고,준수한 외모를 가지고,영석한 머리를 가지고,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사랑을 받고,좋은 선생님들과 지인을 갖고,사랑하는 가족들이 저를 모태신앙으로 하느님 품안에서 태어나게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2.모든 것은 내 탓이다.나는 주님 앞에 죄인이다.행복하게 살자. 하짐나 늘 쇄신하며 겸손하게 오만하지 않도록 경계하자. 3.예수회...오늘 정말 많은 것을 깨닫는다.프란치스코 교종, 강우일 주교, 꼴베/김정욱/김동건/문정현/문규현 신부님, 그리고 페북을 통해 기사를 보고 알게된 정일우,박문수 신부님 등등의 공통점이 예수회 사제라는 것... 그 미션에 나오는 남미원주님과 함께 싸우는 ..

140128 페북에 쓴 글

성당에 가려고 한다. 부모님께 말했더니 너무나 좋아하신다. 양가 식구들이 모두 천주교인이다. 난 모태신앙이었다가, 중학교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성당 언니들이 날 질투한 사건을 계기로) 무교가 되었다. 머리 커서도 성당과, 불교 서적을 뒤적였으며.. 스무 살에도, 스물 두살 즈음에도 다시 성당을 찾았지만 거리감이 느껴져 포기하고 말았다. 교리와 교인들의 상당한 괴리감은 성당 공동체 안에 나를 소속시키기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바보같았다. 나는 진리탐구적인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반신반의했고, 무조건적으로 믿는 신자들에게 나의 불확실성이 민폐를 끼치진 않나 괜히 혼자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는 나 같은 사람들도 감싸줘야한다. 주객전도가 되어 나만 미안해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