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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6. 신약성경 정경목록

90' 2015. 12. 13. 18:55

1세기 중반부터 신약성경이 생겨나기 시작함. 최초의 신약성경은 테살로니카 전서. 50-51년 경, 바오로 사도가 씀. 그 후에 복음서들이 쓰임. 마르코 복음 70년 경, 루카 마태오 복음은 8-90년 경. 그러니까 복음서보다 바오로 사도의 친필 편지가 먼저 쓰임.

1세기 말에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봉독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간단히 해설한 것이 주일 미사의 강론이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특별히 존중받은 이유는 구약성서는 간접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반면,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는 예수를 직접 증언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성경은 유다인들이 사용하고 초대 교회가 사용하던 구약 성경과 차츰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1세기 후반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나름대로 일정한 신약 성경 모음집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함. 왜나하면 주일 집회 때 구약 성경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신약도 읽었기 때문이다. 

복음서 한 두가지에 본래 공동체에 보내진 편지들이 그 신약 성경 모음집에 속했을 것.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집회 때 읽는 것은 일차적으로 구약성경, 그리고 그 공동체에 보낸 바오로의 편지; 예를 들면 고린토면 고린토의 편지. 그리고 또 복음서들을 읽는다. 

이들이 점점 복사가 되고 공동체 간의 서로 없는 것들을 필사해 교환하여 집회 때 읽음. 이 때 각 공동체는 집회 때 읽어야하고 읽지 말아야할 성서를 판단해야 했다. 그래서 공동체마다 신학 성경 목록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신약 성경 목록은 각 공동체의 판단을 거친 다음, 어떤 공통의 신약 성서 모음집으로 받아들여졌다. 

2세기로 넘어가면서 이 공통의 신약성서 모음집에 문제가 생김. 그래서 교회가 신약성서 정경목록을 정해야했다. 그 이유는 이단 때문이었다. 두 가지 이단이 생겨났는데 '그로시스' 이단과 '마르치오' 이단. 그로시스 이단은 우리말로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1-2세기에 널리 퍼진 이단이었다. 현대적 세계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인간계 및 신계의 비밀을 연구하고 인간과 신이 무엇인지 알게하여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을 교리로 삼은 이단. 그노시스에 물들면 무수히 많은 가짜 복음서와 가짜 서간들을 조작해서 예수와 사도들이 그노시스 사상을 가르친 것처럼 퍼뜨렸다. 예를 들면 베드로, 토마, 필립보, 히브리, 나자렛, 12사도, 70인, 야고보, 유다, 니코데모 복음서 등등 엄청나게 많다. 이런 '위경'을 따로 모아둔 것도 있다. 위경복음서에 굉장히 재밌는 게 많다. 행전도 토마행전 등 무수히 많다. 그노시스는 정경목록을 확대한 경우로서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한 성경이 훨씬 많다. 

반면에, 마르치오 이단은 정경목록을 최소화했다. 마르치오는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로 이주해 독자적으로 교파를 세우고 마음대로 주교를 임명함. 예수님의 열두사도는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을 뒤섞어서 복음을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야 말로 참된 복음을 전했다고 함. 그래서 마르치오는 구약성경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도 유다인들이 날조한 것은 빼내야한다며 오직 루카복음만이 참된 성경이고 나머지는 빼야한다고 했다. 루카는 바오로 사도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마르치오는 바오로 서간이라고도 다 받아들이지 않고 유다교 냄새가 나는 부분은 다 빼버렸다. 즉 정경목록의 축소다. 구약 다 빠지고, 복음서도 루카복음 빼고 다 빠지고, 바오로 서간도 몇 개 빠지고. 

이처럼 초대교회는 마르치오와 그로시스 이단과 싸우면서 교회전통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래서 2세기부터 정경목록이 문제가 되었던 것. 그 과정을 재현하는 것은 역사적 사료가 없어 불가능. 그러나 귀중한 자료 하나가 있는데, '무라토리 정경목록'이다. 무라토니는 18세기 이탈리아 신부이자 역사학자로서 밀라노 도서관에서 신약성경 정경목록을 발견했는데 이는 180년경의 것이었다. 여기에는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요한3서를 제외하고는 지금 현재의 신약 정경목록과 똑같았다. 그래서 이미 2세기경에 이미 어느정도 지금과 비슷하게 정경목록이 확립되었다는 것. 이게 어느 공동체의 것이었냐면 로마교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