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브리어 마소라 텍스트, TM
기원 후 70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티토 장군, 후에 로마제국의 왕이 됨) 이스라엘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성전의 주축으로서 썼던 벽만 남겨두었다. 그것이 현재의 통곡의 벽. 로마에 항거하는 민족들은 다 이렇게 파괴당할 것이라는 듯으로 남겨둔 벽. 그 때 예루살렘의 성전들이 파괴되고 사제직도 없어지고, 말씀 뿐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학자들, 성서학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을 유지해나간다.
성서학자들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서쪽에서 성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동안의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기록하고 전해오는 성서 사본들을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은 갈릴레아 호숫가의 도시 티베리아로 옮겨가서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티베리아 학파'라고 한다. 또한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 유배가서, 바빌론에 남아있던 유대인 중에 성서연구에 전념하던 사람들을 '바빌론 학파'라고 한다. 그래서 이 두 학파들이 여러 성서 본문의 표기법을 통일하여 일정한 체계로 모음을 붙이기 시작했다.
ref. 히브리어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는 언어다. 쓸 때는 자음만 쓴다. 그동안에 내려온 성서가 전부 자음만 있어서 발음할 때 어떻게 읽어야할 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에 통일한 것.
여기에 모음을 붙인 학자들을 '마소라 학자'들이라고 하고, 이 텍스트를 '마소라 텍스트'라고 한다.
TM : Text와 마소라의 약자.
2. 그리스인 70인역 그리스어 성경. (LXX)
이집트 북쪽의 알렉산드리아(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대왕이 세운)에 유다인들이 많이 살았다. 유다인들이 점점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모르게 되면서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들을 위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을 할 필요성을 느껴 번역이 시작됨. 기원전 2세기 경에 완역됨. 일선에 의하면 72명의 학자가 72일 밤낮으로 번역했다고 하지만 이건 역사적인 근거는 없는 전설.
이 그리스인 70인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마소라 텍스트에 들어가있지 않은 텍스트들이 있다. 유딧기, 토빗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엘즈라 1서, 지혜서, 바룩서, 다니엘서의 그리스어부분 등등. 모세 오경은 비교적 충실히 번역했으나 나머지는 의역이 많다. 여러 사람이 오래동안 번역했기 때문에 용어나 문체의 통일성이 없고 몇 군데 오역도 발견됨.
중요한 것은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 성경을 많이 애용하고 필사도 많이 해서 오늘날 이 그리스인 70인역 성경이 약 400개의 번역이 있다. 많은 복음서가 인용하는 성경이 전부 다 70인역 그리스어 성경이다. 실질적으로 현재의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끼친 것은 마소라 성경보다는 70인역 그리스어 성경인 것.
3. 라틴어 불가타 성경. (Vulgata)
성 예루니모가 번역함. 기원후 2세기 중엽. 그 전엔 그리스어가 공용어였지만 차츰 라틴어를 많이 쓰게 됨. 그래서 라틴어 번역이 생겨남. 유대교 랍비들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우고, 마소라 텍스트에 가까운 히브리어 텍스트에서 번역을 함(기원후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까지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즉 1->2, 1->3. 원본은 히브리어. 실질적인 영향은 헬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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