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부:리뷰·창작비평·비교/31_감성취향

131001 목적과 수단

90' 2013. 10. 1. 13:21

어제 밤 잠도 안오고해서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를 훑어봤다. 민생단은 기억나지않는 사건이고 또 20-30년대 만주지역 투쟁기도 한번 복습할겸 근현대사 노트를 무장독립투쟁 파트를 읽었다. 민생단은 없어서 검색을 해봐서 짤막히 읽었다.

근현대사에서 항일 무장 투쟁에 가장 마음이 이끌렸었고, 지금도 흥미로워서 책이나 사두고 읽을까 했다. 네이버 책에서 무장투쟁 항일 독립운동 등등 키워드를 검색해봤는데 수도 고작 열개씩도 잘 안나오고 대부분 거시에다가 미시 어쩌다 있으면 논문 엮음이고 그것들도 다 10년은 더 되고 거의 팔지도 않는 책들이었다.

한심하다. 진짜 한심한 나라다.

한국 근대의 비밀결사그룹들을 다루며 한국의 레지스탕스,라고 이름을 붙인 책이 이번 년도에 하나 나왔는데 전혀 끌리진 않았다. 너무 거시적인데다가 애초에 무장투쟁은 의열단밖에 안 다뤄서 말이다. 게다가 의열단은 상대적으로 초 메이져라 어느 책이나 다 다루곤 한다. 그러다 저자 조한성의 인터뷰 하나 읽었는데, 생각에 꼬리를 문 게 있어서 첨부한다.

출처: http://ch.yes24.com/Article/View/22136

신민회, 대한광복회, 의열단 등 많은 조직을 다뤘는데 개인적으로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이 깊은 조직은 어떤 조직이었나요?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단체는 의열단이었습니다. 의열단은 1919년 창단 이래 1935년 공식 해체를 선언하기까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우선 암살과 테러라는 충격적인 운동방법이 그러했고, 이에 입각한 수많은 시도와 성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정세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론의 변화를 모색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꿈꾸었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민족주의였지만 때때로 아나키즘, 공산주의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의’가 아니라 ‘독립의 성취’ 그 자체였고, 그 외 모든 것은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역사서나 소설이 있다면 무엇이며, 좋아하는 저자가 있으신지요?

가장 좋아하는 역사서는 임경석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규명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체 역사서술로 대중을 배려한 역작입니다. 조재곤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도 좋아합니다. 서술방식은 평이하지만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일순간에 바꿀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로는 황석영의 『손님』과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좋아합니다. 『손님』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대규모 학살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미군이 저지른 학살로 선전하지만, 황석영 작가는 합리적 근거를 통해 좌우 갈등이 낳은 주민들 간의 비극임을 밝힙니다. 『밤은 노래한다』는 만주에서 벌어진 민생단사건을 다룬 소설입니다. 민생단사건은 저도 이번 책에 자세히 다루었는데, 김연수 작가는 현지 답사와 역사가 못지않은 사실 탐구로 당시 사건을 멋진 문학작품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단체는 의열단이었습니다. (중략)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의’가 아니라 ‘독립의 성취’ 그 자체였고, 그 외 모든 것은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독자 대부분이 공감할 정도로, 라니 하긴 의열단은 인상깊고 유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수단이 잘못되어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일을 감행했다.

'목적과 수단'

까뮈 정의의 사람들을 관통하는 주제기도 하다.
"수 만명의 굶어죽는 아이들을 위해 한 아이를 죽이는일"이 있다.
그럴 수 없다는쪽, 즉 어떠한 목표라도 수단이 잘못되선 안된다는 그룹과
그럴 수 있다는쪽, 즉 다른 도리가 없으니 차악을 행해야한다는 그룹으로 나뉜다.

작가 까뮈는 수단이 잘못되선 안된다는 쪽으로 손을 들어주는듯했고, 정의의 사람들은 정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조롱하는듯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을 지나 현재 21세기에는 수단이 잘못되선 안되다는 것이 거의 주류 사상이 되었다. 난 잘 모르지만 어쩌면 주류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실시 된 것 같기도.

예전에 '한 명의 어린 아이라도 죽여선 안되는거야~ 캬~'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잠자코 닥치고만 있었었다. 둘 중 뭐가 옳은지 난 아직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은 하나 있다. 역사는 언제나 현실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
살인에 국한해서 봤을 때도, 잘못된 수단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의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드 아이들을 죽이는 세상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이십대 들어서 윤리라는 것이 융통성있는 모든 현실문제에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생각해보면 어느 선택에 있어서 항상 절대적 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했다.

스무살 되자마자 가입한 진보신당을 바로 탈퇴했던 것도 '전위'를 택했던 그들과 노선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당시 나는 오세훈을 찍느니 한명숙을 찍는 인간이었다.
지금 노동당이 된 진보신당이나 현재 당적이 있는 녹색당이나 이런 소수정당에는 수단에 대해 굉장히 강경한 분들이 많은데 난 그분들을 존경한다. 그뿐이다. 난 모르겠다. 강정에서도 강경한 비폭력주의이신 분들도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했다. 하지만 내가 비폭력을 외친 적은 없다. 비폭력은 좋지만 나는 비폭력주의자가 못되는 사람이다.

나는 너무도 지는 게 싫었다. 고위 관료들에게 '공동체 자연 파괴하고 양심이 있느냐?'라고 묻고 역사에 남기보다는, 다른 현실적 수단으로서 낭만은 없겠지만 현실에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는게 자존심이 상하는 그런 철없는 인간이다.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자로 불리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싫다.

계속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그냥 내가 살아온 행적들을 보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운동하시는 분들이 이런 사람들 싫어하는 거 아는데,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게 대부분 사람들의 '현실'이라는 것도 알고, 내가 보통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근현대사에서도 20-30년대 무장투쟁독립부분을 가장 애타게 읽었다. 어떻게 보면 화약냄새를 좋아하는 인간류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현명해지고 싶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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