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aily/16_관통적문제의식

사람의 모순성과 불완전함의 빈틈에도 순수, 사랑, 관계를 향한 희망의 창작.

90' 2016. 12. 17. 16:32
사람의 모순성과 불완전함의 빈틈에도 순수, 사랑, 관계를 향한 희망의 창작.


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피해자가 자기 스스로 가해를 한 난파 사건에 대해서도, 댓글로 피해자 역시 이런 선입견이 있는데, 뭐 어쩌고 힘내세요. 이렇게 말해도 나의 실수는 이미 원사건에서 가해자로 되는순간 실수가 실수가 아니라고 말하겠지. 그들의 논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원래 불완전하고 비논리적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편견, 자기 위주, 아무리 똑똑하고 피씨해도 남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남의 방어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완전한 선과 악은 없다. 피씨한 진보적 사제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인민재판에 세운다.


그럼에도 사랑과 관계맺기를 하는 우리는 무엇일까.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악한 인간성 내의 상상력과 관계, 사랑의 영역들이다. 암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더라도 그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랑하는 감정들이 오갔을 때에 벌어지는 순간들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추운 날 기다리는 것, 자기 시간을 쪼개서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해주는 것, 짜증내며 화내지만 달래주면 바로 헤헤 하고 웃는 사람, 가능한 영역 내의 포용과 배려, 음악, 상상력의 간격. 지식보다 상상력. 그리고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일상을 지키고, 폭력 앞에서도 꿈을 꾸는 자유를 지키는 것.

이것들은 결국 예술이란 형식이 아니고서는 표현될 수 없다. 음악, 영화, 문학과 같은. 나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관계맺기를 이야기하는 창작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창작물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브라이언 윌슨과 같이 그냥 자체로 아름답기만한 것도 있다. 내가 컨셉트를 어떤 것으로 결정하냐의 문제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유는 상상력 설레임 포용 순수함 (이것이다 지식보다 올바름보다) 이걸위해 살고 이것만이 내 힘이 된다. 익숙한 가족도 사랑도, 익숙한 소중한 것들을 되찾기 위한 여행마저도 그 일상은 그것들이 없으면 무미건조하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넌덜머리나는 정치마저도 이것이 있으면 좋아진다. 그래서 친밀한 사적 연대로서의 강정마을 투쟁이 가능했다.

인간의 모순이나 불완전성이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그 인간적인 이야기가 좋다. 폭력적이고 공포의 공간, 혹은 모순적이고 가증스러운 구석에서도 숨어있는 인간적인 사랑스러운 코드들. 사람의 모순성과 불완전함의 빈틈에도 순수, 사랑, 관계를 향한 창작. 그 조그만 희망과 가능성에 대하여 끈을 놓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