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998년작 원더풀 라이프를 보았다. 낭만이 짙은 작품인데 인생에는 단맛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금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스타일이 훨씬 좋다. 세계의 구조를 지워버리는 듯한 키치의 감성. 물론 위로가 될 때는 고마운 감성이다. 하지만 맘에 차지 않을 때는 영 불편하다.
남자는 죽고 오십 년동안 사후 세계에서 생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끝내 고르지 못한다. 후반부에 남자는 자신이 죽지 않았었다면 아마 결혼했었을, 생전의 정혼자가 선택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자신과 함께 의자에 앉아있던 한 낮이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자신이 누군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의 일부였다는 것. 그제서야 남자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자신이 타인의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 그의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거기서 결정되었다. 인생의 가치를 거기서 찾은 것이다. 타인의 행복의 일부. 이것이 나의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 거였을까. 첫 사랑, 강정, 일본 이런 것들이었을까. 영화를 보고 외연을 확장했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였던 순간들을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가족, 연인, 혹은 누군가. 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말을 했을 때, 말이 없던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 때, 고백을 받아줬을 때. 가족이라면 더 쉬울 것이다. 영화에서도 호색한 할아버지는 영화 내내 음담패설만 하다가 결국은 딸의 결혼식장에서 꽃다발을 받은 순간을 택했다. 따뜻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건낼 때, 꽃다발을 건낼 때, 그리고 우리 할머니처럼 노년기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손녀가 있을 때. 생각하다보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인해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고 그것을 증명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내게도 큰 행복을 줄 지, 그리고 마음 따뜻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이 무조건적으로 내게 큰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게도 가치있는 누군가 혹은 어느 순간에서의 내가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라면, 내 자신만의 행복보다도 더 흔쾌하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든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일은 낭만적이니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했을 때를 생각하니까 마음이 울렁거린다. 마지막 순간으로 가지고 가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는 것부터, 처음 밤새 둘이 이야기 하던 순간, 이 세상이 끝나서 너가 없어질까봐 너무 무섭다고 울던 순간, 이 사람이라는 확신에 달콤함에 완전히 잠식되어 빠져있던 순간, 이토록 완벽한 순간이 있는지 놀라워하던 밤들. 지난한 추억들에 참으로 많은 사랑과 빚을 지고 살았구나. 그러나 살다보면 환멸이 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나고보면 미화가 되는 인생의 희노애락. 여튼 살아있다는 것은 고통과 행복이 함께 있는 것이고 대단하긴 하다. A THING. WONDERFUL. 꼭 좋단 얘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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