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aily/15_인물

변영주 인터뷰. 마이웨이로 완주하기.

90' 2019. 4. 19. 17:58

변영주 인터뷰

http://ipm.hallym.ac.kr/interview/16847

 

자유인 - <'自由人' 인터뷰 28> 변영주 영화감독

김진숙과 통화하던 그날, "이런, 젠장 할…" 꼰대들과 싸우는 것이 임무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 서고 싶은 때가 있다. 방향을 잃은 것 같아 한없이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함정에 갇힌 것처럼 마음이 갇혀 헤맬 때, 날 구원해주진 않지만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길을 살짝 알려주는 이를 만나게 되면 행운이다. 행복이다. "영화를 안 만든다고 내가 죽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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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했던 몇 부분들

- 요즘 친구들한테 미안하다. 나도 먹고살려고 시간 강사 같은 것도 한다. 시간강사로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화차>가 잘 되면 한 학기 또 뛰겠다고, 쓸데없는 약속을 했던 것 때문에 강의를 또 하게 되었다. 사실 애들 가르치는 것 진짜 싫다. 내가 20년에 걸쳐서 깨달은 걸, 요돈 받고 애들한테 풀어 준다는 게 막 억울하고 분하다.(웃음) 그래서 애들이 이해 못 하는 표정 지을 때 되게 좋다.(일동 웃음) 농담이고. 

- 영화를 안 만든다고 내가 죽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가끔 후배들이 "감독님, 저는 영화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면 "영화가 무슨 죄가 있어서?"라고 한다.(웃음) 나는 영화보다 내가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고 싶다고 느껴지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을 관객들이 사랑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포기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안 한다. 내가 만약 어느 날 영화감독을 더 이상 못하게 되면 불행해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다. 

- 1985년에 대학을 들어갔는데 그때에는 대학에 두 종류 학생이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학생운동을 하는 것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대를 다녔는데 운동화를 신고 데모하는 애들하고, 하이힐을 신고 데모하는 애들을 도와주는 애들이 있었다. 이 말은 학생운동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자기가 옛날에 80년대 어디에서 뭘 했다고 하는데, 그 대단한 일 모두가 다 했던 거다. 2002년에 월드컵 응원 간 거랑 똑같다.(웃음) 잘난 척하면서 내가 그때 잡혀가고 그랬다고 하는데, 정말로 누구나 다 했던 일이다. 

- 언제나 선배들이 날 뒤로 숨겼다. 내가 애들보다 기본적으로 머리 하나가 크지 않나.(웃음) 첫날 데모하러 나갔는데, 그날 노량진 경찰서에서 날 불렀다. 데모하는 사진에 찍혔는데 거의 내 독사진처럼 나와서 한눈에 난 줄 알아봤던 것이다.(웃음) 그래서 선배들이 나는 좀 보호해줘야 한다고 해서 항상 뒤에 섰다. 특별히 돌이나 화염병도 못 던지게 했다. 증명사진이 나온다고.(웃음) 

-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야,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막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 중에 더 훌륭한 선택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있는 거다. 다만 행복할 자신은 있으시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밀애>나 <발레교습소>를 생각해보면 매번 중간에 멈췄던 것이 흥행에 실패했던 것 같다. 바꿔 말하면 <화차>가 그나마 좀 잘된 것은 내가 상업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중간에 멈춰 서지 않고 끝까지 가 보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상업적인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중간에 멈춰 서지 않고 끝까지 가 보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