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재개봉한 릴리슈슈의모든 것을 봤다. 중학교 때쯤에 이 영화를 처음 봤었다. 그때는 이 영화가 주는 뮤직비디오 같은 형식과 뚜렷한 색체나 강한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들과 자극적인 플롯에서 나오는 끌림 같은 것을 좋아했었다. 십몇년이 지나고 오늘의 소감은 이렇다. 초반에는 나이브하단 생각이 들었다. 클리셰같은 전형적인 십대의 모습을 그리면서, 적당히 음울하고 초록색 필터를 끼고 촬영한 장면들이라거나 거친 핸드헬드 등으로 역시 클리셰같은 연출을 했다고. 그런데 점점 예전엔 느끼지 못한 지점들이 느껴졌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건 부채감과 슬픔과 분노같은 것이었다. 이건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십대를 그대로 그린듯이, 구체적으로 현실의 예들은 얼마든지 댈 수 있을 거였다. 아이들의 극단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순응적인 대처방식은 울고 싶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지금의 감수성만도 못했던 과거에는 학교폭력을 가족이나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허다했다. 누구도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것임은 매일 일상에서 아이들 사회의 폭력망이 얼마나 철옹성처럼 촘촘한지를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임을 알기 때문에 부채감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크고 작을 뿐 내가 살아오며 봐왔던 일상적인 숱한 폭력들과 나 역시 겪었었던 일들. 어른들은 늘 모른척하지만 그들이 정말 모를까. 이 영화 담임 선생님처럼 아이들의 심각한 폭력을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스스로 모른다고 세뇌하듯 절대 개입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 그것 우리 모든 어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마치 자신은 그런건 겪어보기는 커녕 보아온 적도 없었다는 듯, 지금도 반색하듯 놀란척하고 순진무구한척, 아니 정말로 책임감을 배운적 없이 어른이 되어서 까맣게 잊고 사는 대부분의 어른들. 적어도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십대시절 어떤 폭력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과 이삼년전, 나름 신뢰감을 느끼는 초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에게 용기내어 조심스럽게 이와 관련됐었던 아이의 근황이나 연락처를 아는지 물었고, 참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그녀들 모두 결과적으로 이제와 갑자기? 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빈정어린 냉담함을 보였을 때 역시 이게 일반적인 감수성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3:공부:리뷰·창작비평·비교 > 4_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나리 (1) | 2021.03.08 |
---|---|
화양연화 재개봉을 보러가자. (0) | 2021.02.03 |
네멋 단상 (0) | 2020.06.16 |
미션 여성 의병 편집 버젼 (0) | 2019.07.29 |
다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 생각 (0) | 2019.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