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캠 아감벤 강의 2강
2016-01-18 월요일
강의 초반에 '생명정치'의 개념에 대해서 김상운 선생님이 오랫동안 천착(?)을 해오셨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푸코의 말년의 개념 중 하나인 '생명 권력' 혹은 '생명 정치'가 있다. 데리다가 <짐승과 주권자>에서 이 개념에 대해서 탄핵을 많이 한다고 한다. 들뢰즈는 푸코에서 썩 명료하게 탐탁치않음을 내비치진 않지만 어느정도 그렇다고.
오늘 <유아기와 역사>에서 아감벤과 데리다라는 절이 있다. 거기와 관련된 얘기를 미리 하자면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푸코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비오스, 동물적인 비오스ㅡ조에 사이의 확연한 대립선을 긋는다. 데리다의 질문은 과연 그게 명확하게 구별될 수 있을까? 라고 한다. 아감벤 저서에는 벌거벗지 않은 것으로서의 조에 혹은 자격을 갖춘 비오스적인 조에, 라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데리다가 아감벤을 문제삼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푸코의 이 개념 자체가 굉장히 어설프다고 말한다.
1장. 언어와 존재의 부정성.
오늘 2강은 하이데거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간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한다. 인간은 '존재자' 중에 하나다. 인간이 다른 존재자들과 구별되는 것 하나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의 가능성의 조건에 대해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존재자라는 것이다. 그 질문의 시작은 '현존재'에 있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은폐된 상태에 있다고 봤다. 은폐는 감춰진 것.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용어 중 하나가 '은폐 - 탈은폐'다. 진리는 탈은폐시키는 것이다.
아감벤도 철학을 그런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며 또한 언어능력을 갖고 있는 동물이라고 개념화한다. 홀로 고독하게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때의 그릇은 '언어'다. 자기 자신과 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혼잣말이 아닌 것 중에 <존재와 시간>을 보면 '잡담'이란 것이 있다. 현존재와 구분되게 '대중'에 대해 파악하는 하이데거의 용어 중 하나가 '다스만'이 있다. 다스만은 흔히 세인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인 측면으로서의 사람들이다. 사람들 말에 휩쓸려가는 존재들 말이다. 알맹이 없는 얘기만 떠드는 것의 잡담 말이다.
언어는 언어 자체를 제외하면 다른 그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다. 언어란 곧 말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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