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친구들에게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아마 페북에도 몇 번 썼었기에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그 말을 하는 기제에는 대학을 당연하게 다니는 것에 대한 '저항심'이 들어가있다. 대학을 다니는 것에 관하여 그 사실을 '당연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진지하게 '학벌을 반대하지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학을 다니는 주제에 남에게 대학 다니지 말라고 말할 염치는 더더군더나 없고 그런 것을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학교 다니는 것이 실제로 감사하다는 연유 아래에 내 최소한의 경계선으로 그 말을 자주 꺼내는 것이다. 아마 이를 캐치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나는 스무살 이후로 5년간 고졸로 살았다. 공부가 싫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럴 환경이 안되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내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많은 기회를 박탈당했었고, 심지어 공부마저도 힘들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줄 알곤 했고, 회사 동료들은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고졸인 줄 알곤 했다. 이후 단순히 공부를 할 마음이 없다면, 당당히 밀고 나갔을듯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교에 왔다.
나는 십대 시절부터 지그금까지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십대시절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었다. 이후 5년간 대학 학적이 없는 동안 누군가에게 내가 들은 말중에 가장 공감갔던 말은 이것이었다. 그 누군가가 내게 대학 가라며 "그 학벌주의 반대하는 사람들 다 전부 명문대 나온 사람들 아니야. 자기는 여지껏 인생에서 그걸로 벌어벅고 살아온 주제에 애들한테는 쉽게 대학가지 말라고 그러고 순 양아치들이다." 이라고 화를 냈었던 것.
언제나 학벌 사회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왔고 그 때도 그랬지만, 나는 학벌반대 어쩌고 외치면서 일상 생활에서 학벌가지고 벌어먹고 이득챙기며 은근히 드러내는 그들이 너무 역겨웠다. 실제로 내게 대학반대 선언 등을 말했던 사람들은 전부 고학력자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 말들에 혹했던 나는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학벌반대운동에 대해서 항상 지지를 하는 입장이면서도,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싫었던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특히 대학과 관련해서 내게 무얼 묻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대체로 대학은 가는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공부를 하려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왠만해서 대학을 안나오는 것으로 받는 기회의 박탈은 너무나 큰 범위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지금도 책임지지 못하는 구조에서 무조건 대학반대를 하라고는 못하겠고, 다른 무언가로 계속 진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이 운동을 하고 있는 내 지인을 사랑한다. 그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렵지만 확실한건 내가 대학에 와서도 항상 그랬지만, 남에게 함부로 대학 가지 말라고 말하지만 았않을 뿐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과도 항상 대학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잘한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언제나 그것을 경계하려 한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이 불편하지 않는 것을 늘 기제로 생각하려 한다. 내가 고졸이었을 때에 더욱 세심했던 감정선도 잃고 싶지 않다.
△ 위 글을 쓰게된 계기. 기사 참고
평범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말대로,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난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연구공동체) 다니며 공부할 시간과 돈과 공력이라면 대학을 시도해보라고 했다. 그건 나를 위하는 말이지만 옳은 말은 아니었다.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사회는 뭐지?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거의 고학력자들이었다.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공고화했고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를 내면화했고 자기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애썼고, 자신이 어느 대학 몇 학번이라는 걸 자연스레 노출했으며 그로 인한 실리를 살뜰히 챙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돼버려 월 백만 원에 이르는 재수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 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 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 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 보니 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 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 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 기준에 석박사는 있어도 고졸 학력 기준은 아예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했다.
불편해도 괜찮았다. 나의 평범하지 않음, 소수성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여러 갈래의 경험은 내가 사회학이나 여성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현실 문제에 부딪혀 본 것들이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 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에는 ‘그것’과 관련해 꽤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괜찮지 않았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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