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를 가진 사람들
추억이 컹컹 짖는다
머나먼 다리 위
타오르는 달의 용광로 속에서
영원히 폐쇄당한 너의 안구,
물 흐르는 망막 뒤에서
목졸린 추억이 신음한다
그 눈 못 감은 꿈
눈 안 떠지는 생시
너희들 문간에는 언제나
외로움의 불침번이 서 있고
고독한 시간의 아가리 안에서
너희는 다만
절망하기 위하여 밥을 먹고
절망하기 위하여 성교한다
머나먼 다리 위
타오르는 달의 용광로 속에서
영원히 폐쇄당한 너의 안구,
물 흐르는 망막 뒤에서
목졸린 추억이 신음한다
그 눈 못 감은 꿈
눈 안 떠지는 생시
너희들 문간에는 언제나
외로움의 불침번이 서 있고
고독한 시간의 아가리 안에서
너희는 다만
절망하기 위하여 밥을 먹고
절망하기 위하여 성교한다
다혜가 프사로 해둔 일찌기 나는.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의 초반의 문장 하나도 떠오른다. "남쪽 지방의 밤은 거칠었다. 소용돌이가 돼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뒤, 밤은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창문 너머는 그 무엇으로도 해석되지 않는 침묵의 세계였다." 무엇으로도 해석되지 않는 침묵의 세계. 검은 물결, 어둠으로 가득찬 유리창 너머의 수평선.
최승자. 이 시를 보면 떠오르는 단어들. 괴로움. 외로움. 절망. 조급함. 고통의 쾌락. 멍청함. 바보같은 청춘. 이런 것들. 미친듯이 아무렇게나 나오는 말을 써보자면 으음 나는 괴롭다가 행복하고 감사하고 외롭다가 절망하고 마음을 다잡고 하지만 조급해서 나는 고통스럽고 거기에서 쾌락을 느끼기도하지 나는 멍청하고 이 바보같은 청춘을 보내고 있고 나는 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사랑하려하지만 결국 그것은 외로워서 고독해서 지리멸렬해서 이 하루하루가 뻔하고 지겨워서 권태를 벗어나려고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서 다시 조급하고 아닌척하고 나는 조금씩 늙어가며 가라앉아. 차분해서 좀 다행이다. 나이를 헛으로 먹진 않아. 나는 욕심을 덜고 차분하게 있을래.
그래도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알고 싶고 서로의 제각각이고 철저하게 개별적인 고통을 나누고 싶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니. 행복에 도달하는 너와 나. 행복은 꿈. 꿈. 지나가버리고 말 벚꽃같은 것. 우주의 암흑물질을 뚫고 내게 온 것. 이해하진 못해. 난 널 모르고 넌 날 몰라 난 날 몰라 하지만 이해한다고 믿게끔 둘이 동일하게 착각하는게 사랑이야 미라클한 가능성을 꿈꾸니. 너무 그러진마. 그건 집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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