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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팟캐스트 ::: '김윤'편 인트로 - 남해금산 (2015-06-01)

90' 2015. 11. 8. 19:11

오늘, 방정리를 하며 들었다. 행복하다.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산>의 첫 시 <서시>를 낭독하며 시작한다. 서시에서 화자는 늦고 헐한 저녁을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사먹는다.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제때 제자리에 있다. 아침 특유의 소리들도 신선한 공기도 부드러운 햇빛도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아침이 있는 그대로 상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에게는 제때 제자리가 없다. 모든 것이 미끄러져있다. 자신을 보호해줄 안락한 자리를 찾아서, 그 안락함에 파고드는 것이 휴식이고 또 잠을 자는 일일텐데, 서시의 화자는 거리를 해매고 있다. 

이 불행한 사람이 제때 제자리를 찾아들어가는 조건은 단 한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알아봐주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이런 순간들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를 아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해주고, 나의 보잘것 없는 존재를 납득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내 보잘것없는 것을 용서해주는 사람이 내게 애정어린 눈빛을 보여줄 때, 나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제때 제자리에 맞춤해서 들어간다고 느껴진다. 그때 나는 정처를 찾게되는 것. 이제 거리는 더이상 미끄럽지 않다. 바람이 더이상 낯설지가 않다. 고통스러운 추위도 다 가시게 된다. 그 사람 때문에.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나에게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계는 너무 미끄럽고 모든 것이 제때제자리에 없는 것이겠지. 

나를 알아봐줄 당신을 부를 수 밖에. 그 부르는 일은 지금 약간은 절박해지면서 몸부림같아지기도 하고 커다란 외침이 되기도 하겠지. 당신을 부르는 소리는 결국 당신이 와줘서 나를 이해해주고 나와 세계를 제때 제자리로 돌려놓는 그런 일을 부르는 것이니까. 어떤 기대를 품은 떨리는 춤과 같기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아님 누군가에게 제때 제자리를 놓아주는 선물을 해준 적 있나요?


1. 나는 연애 빼고는 대게 제자리에 있다. 가족이 있고, 따뜻한 집이, 내 방이, 시집들이 있고, 소설도 있고, 든든한 것들이 많다. 적어도 반 이상은 행복한 사람이야.

2. 권희철의 멘트를 주의깊게 들으니 나도 팟캐스트 대본을 쓰고 싶어진다. 잘 써보자. 사랑하는 시도 읽어주고 싶다. 

3. 그의 폰은 꺼져있어서 마지막 정리조차 제대로 못할것 같다. 그대신 사람들을 만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수다떨며 검은사제들 영화를 보러 갈까 했다. 우선 확답이 올 때까지 나는 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방을 정리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느끼면서, 방이 정리되면서 편안해졌다. 오늘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런 순간 자체가 너무 좋아서 컴퓨터를 키고 이 글을 적는다. 팟캐스트 녹음을 할 수 있다면 오늘은 이걸 해야겠다. 게다가 지금 집에 혼자있으니 녹음도 할 수 있고.

4. 내가 연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애정어린 눈빛을 보여주었는가. 그랬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 연인을 고쳐쓰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얘기들을 솔직하게 팟캐스트에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