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찬욱의 <아가씨>를 보며 느낀 것이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젠더문제를 다뤘고, 영화는 그의 과거 영화와 달리 너무도 촌스럽다는 거다. 어찌보면 박찬욱이 남자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주류 언어만을 쓰는 남성은 비주류의 언어인 여성의 언어를 어려워한다. 그에 비해 여성은 남성-여성의 언어를 전부 구사한다. 여성주의 이론을 강연이나 책으로 접할 때에도 여성들은 술술 읽거나 들으며 술술 이해하는데, 신기하게도 남성들은 그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은 어떤 이론이나 학문에 적을 두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남성들은 그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젠더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발화되는 어떤 문제의식들은 여지껏 젠더문제에 관한 고찰이나 읽기 및 교류를 많이 해 본 사람일 수록 어디서 너무 많이 보아왔고 경험해온 것들이어서 (좋고 나쁨을 떠나) 그저 너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박찬욱은 거장 대우를 받는 프로페셔널 창작자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가 팟캐스트에서 말하는 방식을 들으면 정말 내 스타일이다.) 박찬욱은 이번 영화에서 자신이 설명한 뻔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기준에서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고 큰 패러다임의 변화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은 이상 그런 완성도의 영화를 만들었을 리가 없다. 문제는 그가 프로라는 것이다. 설령 자기들 기준에서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면 어떤가. 연출과 시나리오를 잘 만들어 설령 뻔하게 느껴질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받아들이게끔 만들었으면 된다. 그것이 프로 연출가의 몫이다. 그런데 그는 프로답지 않게 이번엔 철저히 평론가와 대중을 함께 겨냥한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만을 만족시키는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는 새롭거나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고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 박찬욱의 방식은 아니다. 분명 어딘가 에러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영화는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아무런 여백도 없고 어떤 논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깊이없는 설명뿐이었다.
프로 창작가로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말 문제는 이 사실조차 자신이 자각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영화가 개똥만한 이야기도 못하다는 피드백을 본인이 직접 들었을 거 같지가 않다. 하지만 분명 자신의 강점을 살리기는 커녕, 약점을 보완하는 것도 아닌, 그냥 약점만을 노출했다. 그리고 영화는 병크였다. 박찬욱스럽지 않은 삼류 내러티브였다. 친절하게도 설명만 하는 것을 보면 연출자 본인이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마지막 씬의 교조적인 메세지는 너무 적나라해서 낯짝이 붉어진다. 나름대로 영화 개봉하면 상영관 찾아가는 팬이었는데 정말 너무하다. 어딜봐도 성공한 남성인 그나 어떤 영화인들이나 평론가나 애호가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멍청해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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