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한 이야기
저자 김만복
아주 오랜만의 리뷰다. 평소에 읽은 것들마다 리뷰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절대적으로 소설을 읽는데 시간도 거의 안 쓰고 허겁지겁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 와중에 한국 소설은 더군더나 안 읽다보니 한국 소설, 그것도 출판사를 통하지 않은 독립출판물을 읽게 될 기회는 여직 없었다. 그런데 이 흔치 않은 기회에 알게되길 잘했다고 느껴 리뷰를 써보게 되었다. 막상 쓸려고 보니까 너무 말할게 많아 쓰다가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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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와 2부로 나뉘어져서 각각 12가지의 단편, 총 24개의 단편들이 모인 소설이다. 독립출판물인데 이 판형의 사이즈와 폰트도 딱 보기 좋았다. 작은데 불편함이 없고 한 눈에 들어온다. 내지는 그린라이트라고 에코페이퍼인데 재질이 색연필로 밑줄치기도 좋은 질감. 여러모로 제작자의 지향점이 느껴졌고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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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십여년간 한국 소설들에 대한 비평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대충 지금 이 곳의 공간감각과 시간감각이 현실과 유리되어 붕 떠있다는 것.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면서 일부러 연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분명히 지금의 시공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작가의 도피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토록 지금의 한국이 악몽같음을, 소설로 표현하기에 짜칠 정도로 매력이 없다는 것인지. 한국 문학을 평소에 거의 안 봐서 내가 할 말은 구색하지만, 그나마 읽은 것들로 떠올리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다. 전제된 시간과 공간이 지금의 한국 어딘가인 경우마저도, 대체로 소설들이 굉장히 감상적이고 예쁘게 포장되어있다. 현실이라고 하기엔 분명히 왜곡된 키치스러움이 전제가 되어있다는 것이 내가 느낀 것이다. 이것이 정말 더 좋은 소설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어정쩡한 도피로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이는 주제와 문제의식에 결정적인 결함을 뜻하는 싸인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시공간이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사람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한 현실감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주 친근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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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들에서 느껴진 것은 타인의 속물스러움에 대한 경멸이다. 아웃사이더 문학의 계보를 한국의 이 독립소설이 잇는구나. 나는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나보다. 21세기는 문학도 음악도 영화도 전부 키치로 오염된지 오래다. '감상주의'와 '진실한 마음의 움직임으로써의 정동'을 감히 내가 어떻게 분리시킬 지는 감도 안오지만, 분명 전자는 키치적인 적폐이고, 후자는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다. 학문의 영역은 내가 말을 꺼낼 분야는 아니지만, 사회학에서도 정동이 유행한지 몇년 된 상황에서 이게 키치적인 움직임과 완전 별개일까 의문이 들긴 한다. 분명 어느 정도는 뒤섞인 것들이 있고 어떤 논문은 키치적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인상비평으로는 철학 분과 정도가 아직 비범함 혹은 중이병스러움을 가진 자만 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엘리트주의가 벗겨지지 않음으로서나마 키치가 장악하지 않은 유일한 영역같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로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본질에 대해 접근하려하는 태도, 시니컬하기도 하지만 냉소하지 않는 김만복의 등장이 반갑다. 정말 냉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욕하기도 하지만 다시금 포용하려하기도 하고 사랑을 다시 해보려하기도 하고, 구부러지더라도 부러지지는 않는, 결국은 냉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괜찮은 출판사의 기획자라면 김만복을 알아볼 것이라 생각하고, 그가 집필을 계속 한다면 문학계에서 필요한 영향력을 크게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문학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로 머리로는 그러려니 할만한 한 문장의 사실, 한 문장의 교훈, 한 문장의 경험을 마음까지 내려보내서 정말 체화할 수 있게끔 하는 가장 빠른 매체라는 생각을 한다. 김만복이 장편을 쓴다면 정말 기대가 된다. 단편이지만 내가 느꼈었던 어떠한 관념을 끄집어내서 다시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운이 느껴졌는데 쓸쓸한 이미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분위기를 가진 단편들도 좋았다. 그리고 가벼운 에세이 하나를 써도 자의식이 범벅된 글들이 다수인데, 김만복은 그에 비해 근대적인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며 고전의 작가 성향으로 아웃사이더 계보의 주인공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 자의식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인상깊게 찬미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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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편마다 단상들을 쓰다가 글이 너무 늘어져서, 나머지는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부분들 위주로 썼다.
첫 단편은 윤회의 늪이다. "우리의 삶이 돌고 도는 순서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 당신이 나에게 한 모든 일들이 곧 언젠가의 내가 당신에게 한 일들이라면" 와 같은 구절이 인상깊었는데, 아마 작가가 윤회의 늪으로 소설을 시작한 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압축시켜 보여주는 프롤로그가 아니었을지. 그런 의미에서 단편들의 순서와, 순서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어느 단편들을 포괄하는 어느 단편같은 도식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잘 배치했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됐다. 소설과 별개로 한때 나 자신은 죽음이 두려웠는데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임에 절망에 빠졌었다. 하지만 결국 윤회의 늪과 같은 세계관을 짓고 그 안에서 내적 평화를 찾아갔다. 나는 타자이고 타자 역시 나 자신이며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고. 내가 죽어도 나와 연결된 것들은 죽지 않으며 그로서 나는 온전히 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를 달랬래며 행복을 찾았다. 합리화면서도 합리화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죽기 전에 되돌이켜본다면 진실로 후회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필수불가결한 태도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믿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공감하며 읽었다. 내 생각에 작가 김만복의 윤회는 나보다 조금 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죽음에 초연하며 우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작가 역시 삶의 생애에 미련을 거둘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상대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내 죽음을 중심에 두고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한 윤회를 꿈꾼다면, 김만복은 그보다도 특정 대상을 향한 집중된 마음과 평화를 바람이 느껴졌다.
시간의 감옥은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단편이다. 파란약을 먹은 매트릭스에서 혼자 빨간약을 먹은 사람의 고군분투처럼, 실존문학의 주인공처럼 구토감을 느낀다. 긍정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데에서 진정 나올 수 있음에도, 지금 세상의 "긍정"이란 말은 문제를 그저 카펫트로 덮어 가려버리고는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모른척한다. 악몽같은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것과, 악몽같은 세상에서 어떤 참담함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마취시키고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후자는 틀렸다. 그런데 이 세상은 후자를 전자인것 마냥 사는듯하다. 시간의 감옥은 우리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단편이 아닐까.
꿈으로 도망한 사람에서는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나는 옛날에 좋아했던 남미 문학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했었다. 근데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는지 아는가. 자괴감이 들었다. 열아홉에는 읽자마자 압도적인 이미지들에 꼼짝하지 못했을 정도로 직관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어떤 이미지도 통찰도 넘실거리지가 않았고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난해했다. 머리가 굳은 것이다. 나도 책으로, 도서관으로 도망갈 수 있다면. 물론 여기서의 도망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찾기 위한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단편 중에는 카프카를 오마쥬한 법의 바깥에서,도 있으며 작가가 카프카와 보르헤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책에 중간중간 있는 드로잉도 "뭐지...뭔가 중세시대의 성잔 같은 건가?" 싶기도 했다. 왠지 카프카나 보르헤스의 단편집에도 어울릴 것 같은 수수께끼같은 관념이 투사된 드로잉 같이 보였다.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단편은 마치 공각기동대 SF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업로드와 유실이란 키워드가 한 단락으로 끊어져있는 것도 좋았다. 치즈케이크의 이데아라는 단편은 김만복의 분류가 인문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했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는데 재밌는 예시라서 즐거웠다. 거울의 함정은 화자가 등비수열을 계산하고 하는 것이 자폐적이면서 사랑스러운 영화속 매력적인 주인공 같았다. 역시 주인공은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 소설답다고 느꼈다.
연애라는 사랑의 서막은 제목부터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연애와 사랑은 다르지만 사랑의 서막이라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것이 사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다. 나는 연애에 냉소와 희망을 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물찾기는 마치 휴양지에 간 기분이 들었다. 낯선곳과 또다른 낯선곳이라는 이미지가 확 와닿아서 여행간 기분이다. 마치 영화 큡를 볼 때의 흥분 같은 것이 느껴졌다. 구원은 없어, 이런 부분이나 장소는 상관 없다는 부분들이 매우 묵시룩적인 문장들로 느껴졌는데 그것에 취향저격되어서도 좋았다. 행운과 불행이 한때의 환영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구절이나 장소 위에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정도 인식에 달린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구절들도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구나 싶었고 그것이 내 취향이어서 좋았고. 모스코뮬은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의 시간왜곡적인 세계관이 떠올랐는데 그 날 밤이 바로 몇십년 뒤 이곳, 어쩌면 그 윤회와 같은 세계관이기도 하고 말이다.
앞의 단편들을 다 읽고 마지막 단편인 실패의 앞서,를 읽으면 화자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게 되고 부러움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문학적인 태도로 세상을 회의하면서도 본질을 찾아가려던 화자가 마지막에 사랑에 대한 이토록 내밀한 희망을 달콤하게 고백해도 되는 것인가 놀랄 정도로 그에게 소중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치 남의 러브레터를 몰래 훔쳐보는듯한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 같은 나이브하지 않은 희망. 어쩌면 시작과 끝이 굉장히 통일적이고 가장 무명한 이야기 화자 다운 결말로서 마지막 순서를 장식할 단편이 맞았다. 시니컬하지만 냉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의지로 나아갈 결말. 늙어서 죽기전에 자신의 삶을 되돌이켜본다면 가장 가치로왔다고 꼽을만한 확실한 순간. 그것을 미리 통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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