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글] (2012.00.00)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1. 공감능력이 있는 한국 청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들이 지방에 살던 서울에 살던, 집안 자금 형편이 좋건 나쁘건, 대학에 갔건 안갔건... 지역, 학벌, 돈, 등등이 없을 때 겪는 것은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인물이 됐다고 생각하고 공감하면 누구나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나도 주인공 모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돈이 없었다면 유학은 꿈꿀 수도 없다.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밀어붙이고 게다가 공부도 안하고 있는 내가 누구보다 한심했다. 그러나 청춘이고 고양이를 부탁할 수 있는 - 그 이동의 자유가 있기에 아름답다. 움직일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시기이다.
2. 계급 안에 계급이 있다. 차이 안에 차이가 있다. 그것은 차별이 되고 상처가 된다.
3. 영화에 나오는 인천에서 살았다면 나도 혜주처럼 컴플렉스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에 만족하는건 말로 쉽지 어려운 일이다. 환경이 나를 컴플렉스를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서울에 태어나 살고 있고, 날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내 환경이 감사했다. 그래서 너무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게으르고, 등따숩고 편안해서 제 앞가림은 못하고 다른데에 신경쓴다는 그 태희 아빠 말이 너무 콕 박혔다. 또 그 주인공들이 현재 인천에서 활동하는 녹색청년당원들을 알았다면, 이 공동체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더 희망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이게 지자치의 힘인 거 같다.
4. 현재 한국 청년들은 모두 그 주인공들이다. 많은 이들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대학에 가서 부모님 등골을 빼먹거나 최저임금을 받거나 등등의 경로로 묶여살 뿐이다. 또 여러 계급도 항상 존재하고. 말로는 청춘이다, 청춘이 아름답다하는데, 이 구질구질한 일상, 사랑하기도 벅찬 이 청춘을 청춘이라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버겁다. 그러나 아름답다, 마지막 지영과 태희가 떠나는 장면처럼. 누가 이들에게 실패한 인생이라 할수 있는가? 우리는 고양이를 부탁하고 떠날 수 있는 시기이고, 이것이 청춘이다.
5. 그렇다고 아프니가 청춘이다, 따위의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따위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구조를 바꿔야한다. 학생과 비학생의 벽을 부수고, 직업의 계급을 부수어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불릴 각오를 할 때만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할 수 있지 않도록. 그걸 바꿔야한다. 어쩌면 우리는 또 정치로 도피한 것이다. 도피가 아니라 선택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6. 내가 아는 지인들 하나하나, 모두 영화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그들의 입장을 내가 생각해보려고 한 적 있는가? 모두 자신의 삶이 버겁다. 더 사랑하자. 관심갖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7. 잘난척하지말자.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이유가 있다.
8. 그녀를 이해하려한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지방에 산다는 컴플렉스가 있고, 압박하는 가족이 있거나 없고, 대학에 가지 않았고, 돈이 없어서 유학을 가지 못하고, 도전의 기회를 봉쇄해버리는 장벽에 가로막힌 그녀를 이해한다. 다른 이를 이해하자고 말은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이해관계를 풀 때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바로 나를 포함한 내 또래 세대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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