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라이징. 개념화. 객관성. 근거는 대사만이 아닌 여러 다양한 극적텍스트들을 활용해서 하기. 감상과 비유를 논리적으로. 축약함과 간결함 살리기.
벚꽃동산의 상징성
우선 벚꽃동산의 매각을 통해 라넵스까야와 가예프는 자본적 자산이 사라지고, 그 자본은 로빠힌에게 간다. 실제 봉건주의 귀족은 붕괴하였지만, 새로운 자본가의 도래는 전근대적 귀족의 권력과 다름이 없다. 벚꽃동산은 라넵스까야-가예프 남매에게서 로빠힌으로 넘어감에 따라 자본의 이동을 상징하며, 그 자본은 권력계층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인들인 샤를로따, 에삐호도프, 두냐샤, 피르스, 야샤에게 벚꽃동산의 상징이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들은 벚꽃동산의 매각 전이나 과정, 후에도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귀족들에게 고용됐기에 인간적으로는 다양한 개성을 가졌지만, 사회계층의 권력나눔은 이들을 형이상학적인 것에는 무능력하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들은 라넵스까야의 하인일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해서, 해방됐다거나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보기 힘들다. 로빠힌으로 분류되는 현대의 자본가들이 사실상 귀족성을 바로 되물림받은 것에 따라 그들은 평등한 위치에서 자본가들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자본가에게 고용되는 노동자로 살아갈 확률이 크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권력계층의 삼각 피라미드는 유동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체홉은 이를 분명히 통찰하고 있다.
인물 개개인을 봤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뻬쨔와 아냐다. 체홉은 그들을 벚꽃동산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염원하는 긍정적인 캐릭터들로 그렸지만, 2막 마지막에 뼤쨔가 아냐에게 전하는 대사를 보면 그의 언행불일치적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 달이 떴어. 바로 저게 행복이야. 그 행복이 오는 거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난 벌써 그 발소리를 듣고 있어. 설령 우리가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야? 다른 사람들이 그걸 찾아줄텐데!"
그 달은 벚꽃동산의 매각이며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고 볼 때, 결국 새 시대의 도래에 대한 뻬쨔의 찬양은 그의 관념적인 이상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에게 벚꽃동산은 구시대적 유물이긴 하지만 새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은 있지 않다. 의사이기도 한 체호프는 그저 관념적으로 꿈꾸는 '급진적 혁명'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냐는 그런 그의 생각을 내면화할 수 밖에 없는 관념적이고 수동적인 인물로서 그의 생각을 신뢰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과 같이 인물들은 한없이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힘들며 양면성을 갖고 있다.
벚꽃동산의 여성상과 맥베스의 여성상
벚꽃동산과 맥베스를 통한 여성의 역할을 살펴보면 우선 벚꽃동산의 경우, 라넵스까야는 당시 남성 중심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판단할 때 부정적인 방탕스러움과 결단능력의 부재등의 큰 흠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모성애와 동정심, 배려심을 가졌다는 것으로 이미 전통적인 여성상을 부합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녀의 딸 아냐와 바랴, 하인 두냐샤 역시 여성적인 인물이다. 아냐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분명 남성 뻬쨔를 통한 계몽에서부터 출발하는 당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냐의 따뜻한 배려심과 여성적인 성품 모두는 전통적인 여성성을 대변한다. 바랴는 아냐와 다르게 남성성의 단호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애정을 로빠힌에게 숨기기 위해 짐을 찾는다며 말을 돌리고, 시대에 변화에 아무런 저항없이 순응하는 수동적 인물로서 당시 시대의 가치관에서 여성 태생의 한계를 드러낸다. 두냐샤는 라넵스까야의 과거 모습과 다름이 없는 방탕스러움을 가진 여성적 매력의 인물이다. 샤를로타의 경우 가장 털털한 이미지로서 남성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그녀는 자아의 부재로 유목민처럼 떠돌고 있으며 이것은 특별히 젠더로서의 역할을 대변하기에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맥베스의 경우, 레이디 맥베스는 라넵스까야와는 달리 역시 남성 중심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판단할 때 선과 악이 혼재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극강으로 남성적인 여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상이하다. 한편으로 그녀는 남편의 출세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무릎쓰는 긍정적 모습을 가진 여성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역시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관계속에서 파악 되어야 할 것이다. 극의 플롯이 국왕을 살해하는 것을 중심으로 펼처지는 점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남편의 살해를 부추기는 행위는 당시 남성의 상징인 권력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벚꽃동산의 여성들과 달리 레이디맥베스는 남성적 여성의 전형으로서 특히 극의 1막과 2막에 있어서는 남편인 맥베스와 그녀의 성적 역할은 완전히 도치되어있다. 극에서 그녀는 여타 남성보다도 더욱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성성에 대한 도전은 결국 자살로서 결말이 나고 맥베스 역시 몰락하는 비극으로서 레이디 맥베스의 변혁 시도는 가부장적인 남성의 권력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레이디 맥베스의 남성성은 오직 남편 맥베스를 위한 것이며 이는 그 당시 여성의 태생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레이디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을 보자. 그녀는 남편 맥베스에게, 자신이었다면 제 젖을 빠는 아이라도 골통을 박살내버렸을 것이라며 국왕 살해를 부추긴다. 비록 자기 주체이 아닌 남자인 남편을 통해서만 살해를 해야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 독한 선언은 그녀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성상의 절대적인 바로미터인 '모성애'를 단호히 버리겠다는 뜻으서 당시 사회로서는-현대에서도 마찬가지- 상상하기 힘든 충격적인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내던져 버리는, 어쩌면 전통적 여성성의 순종적인 모습과, 그것을 받들기 위해 자신의 여성적 모습을 버리는 아이러니한 모순을 보여준다.하지만 그녀 역시 살인을 위해 술의 힘을 빌려야했고, 왕의 잠든 모습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원래의 계획과 달리 살인을 맥베스에게 맡겼다. 이는 그녀가 무의식중에 가부장적 권위에 억눌려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맥베스가 왕위에 오른 후 5막에서 그녀는 자신이 제거했던 여성성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에 압도당해 고통을 느끼며 왕비로서의 영광보다는 후회로 얼룩져 이전의 강인함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이는 내면의 여성적인 측명인 감성적임과 부드러움, 연민, 양심의 가책들을 들어냄으로서 여성성의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젠더적인 면을 보았을 때 두 작품을 통틀어, 레이디 맥베스라는 인물에게서 가장 여성상과 남성성이 혼재된 복합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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