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테스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걸까? 우선 이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인가? 과거가 있는가? 미래를 믿는가? 희망은 있는가? 없다. 주인공 쥬코도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등장인물 모두 과거가 없다. 여자아이의 오빠와 언니만 생계에 대한 희망만 가지고 있었을 뿐 그마저도 여자아이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로서 좌초된다. 이들은 급격히 발전되는 사회에서 외각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다. 이 희곡에서는 사회의 물질적이거나 사람들의 정신적 진보조차 보이지도 않는다. 각 장의 장소들인 집, 쁘티 시카고, 지하철 등은 모든 이들을 삶과 사회의 뒤편으로 밀어낸 곳이라는 것 쯤만 추측할 수 있다. 자연은 아예 보이지 않는 회색 모노톤이며, 인물들의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황폐화되고, 인간미가 없음은 물론이며, 그나마 정상적인 구경꾼들 역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극단적이고 세기말적인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쥬코는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 던져진, 평범한 인물이다. 쥬코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호하지만, 그 역시도 앞 날에 대해 기대없이 살아가는 현재의 삶을 구원코자 한다. 마지막 장에 그는 태양을 향한다. 상처받고 패배한 이들이 그를 쳐다본다. 의 희곡의 첫 장 제목이 탈출인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어디서 탈출할 것인가? 그것은 감옥과 같은 이 세상일 것이다. 어떻게? 그것은 죽음이다. 어쩌면 그는 죽음같은 삶을 끝내고 진실로 살 수 있는 곳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로베르토 쥬코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고대 희랍 비극에서 나타나는 국가와 개인, 부모와 자식, 개인과 개인 사이의 억압과 갈등이 현대로 옮겨 달리 재현되고 있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친, 모친, 유아 살해 등을 통해서본 정치와 광기, 권력과 자유의 윤리 문제가 두드러진다. 콜테스는 로베르토 쥬코에서 쥬코와, 쥬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인물 로베르토 수코에 대해서도, 살인과 폭력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윤리적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는 죄책감에 대해서도 어떻다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반사회적 행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독백체의 긴 읊조림이 많은 이 작품은 윤리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고수했던 운명론적인 서양 고대 비극들과는 다르다.
또한 각 장마다 내면의 사색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쥬코의 색깔은 검은색을 상징하는 무정부주의와 일치한다. 어두운 분위기와, 사회 규율에 신경쓰지않는 무정부적인 행위들이 그렇다. 또한 쥬코 뿐 아니라 쥬코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도 보편적 가족 이전의 역사, 즉 원시 가족의 충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이 세상의 폭력과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아예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고, 사라지고 싶은 숨겨진 불안의 근원을 줄곧 시적인 대사로 말한다. 또한 인물들이 지닌 고독은 세계에서 분리되어 내면적 생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이 본질적인 고독은 개인주의에서 볼 수 있는 안락하고 쾌적한 고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보다 원시인적인 죽음과 삶에 가깝다.
또 다른 특징은, 현대 희곡이 지닌 산문의 표현방법과 표현주의적 요소들이다. 이 희곡은 현대희곡답게 개인과 개인의 소통단절, 불명확한 장소의 번번한 변경,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이것은 화자와 청자의 대상이 같은 자동성찰적 담화인 독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던져져' 있다. 이는 로베르토 쥬코가 발표되기 20~30여년 전부터 세기말까지 주요 현대 사상이었던 실존주의적 관점에 입각한다. 실존주의의 주창지인 프랑스의 국적자 콜테스 역시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사람은 던져져있는 존재라는 ‘피투성’의 전제를 가지고 로베르토 쥬코의 등장인물들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콜테스의 경우 까뮈 문학과는 큰 차이가 있다. 까뮈는 자신의 문학에서 실존주의의 이상형으로서의 인물 뫼르소, 칼리큘라, 마르타 등과 같은 자신 스스로 자신의 고난을 해쳐나가는 인물들을 그리며 도덕적 이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콜테스는 위에 말했던 것과 같이 윤리적 판단과 입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로베르토 쥬코의 등장인물들은 절대적으로 소외되었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각몽에 이를 뿐 너무나 무력하다. 게다가 쥬코를 제외한 인물들이 익명적며 비인칭적인 존재로서 더욱더 수동적이고 던져진 그 자체로 존재해 '있을' 뿐이다. 또한 열다섯 개의 장 역시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을' 뿐이다. 인물들은 그저 말할 뿐이다. 그저 독자들은 현대 사회를 투영해 현실을 재가공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인물들
쥬코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잃어버린 인간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보편적인 인간상의 일상궤도를 이탈한 채, 고독과 폭력, 자기 모순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사회악으로 명시되는 살인-그것도 친족인 부모님, 그리고 성인이 아닌 '아이'를 포함해-을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도 자폐적인 대화로서 청자가 자신인지 상대방인지 확실치않는 성찰적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쥬코는 서양 희곡사에 등장하는 죄를 지은 다른 인물들과는 상이한 존재다. 쥬코는 신경증적이고 자폐증적인 행동은 이 시대의 표상이다.
등장인물들을 보자. 우선 주인공 쥬코를 제외한 등장 인물들은 모두 고유의 이름 없이 쥬코의 어머니, 여자아이, 여자아이의 언니, 오빠, 우울한 사복 형사, 우아한 부인, 늙은 신사, 창녀 등으로 지칭된다.등장인물들은 콜테스 이전 까뮈가 자신의 문학에 실존주의적 이상형으로 그린 뫼르소, 칼리큘라, 마르타 등과 같은 자신 스스로 자신의 고난을 해쳐나가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소외되었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각몽에 이를 뿐 너무나 무력하다. 게다가 쥬코를 제외한 인물들이 익명적며 비인칭적인 존재로서 더욱더 수동적이고 던져진 그 자체로 존재해 '있을' 뿐이다.
여자아이의 오빠와 언니의 관심의 대상은 여자아이 뿐이다. 여자아이가 순결을 잃은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오빠에게 여자아이의 순결은 감시하고 지킬 필요가 있는 일종의 투자가치이다. 순결한 동생을 결혼시킴으로써 가난과 실업, 절망에 빠진 가족 등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던 오빠에게 동생이 더 이상 순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유일한 희망의 포기이다. 여자아이의 가족은 주류에서 소외된 듯하다. 희곡에서는 이들이 이민 온 사람들이라는 어떠한 언급도 나타나지 않지만 이들의 대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가족간의 질긴 유대와 집착, 순결을 잃은 동생에 대한 절망, 가난, 실업의 상태로 동생의 결혼만 바라보는 언니, 오빠의 모습은 80년대 프랑스인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방의 땅에서 뿌리내리고 있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주변인들을 연상시킨다.
늙은 신사는 6장 지하철에서 단 한번 등장하며, 6장 이전이나 이후의 극의 전개와 아무련 관련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늙은 신사의 담화는 로베르토 쥬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늙은 신사는 '이 역은 이젠 전처럼 보이지 않을 테고 난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작은 흰색 전등들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는 게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모르겠어.'라고 하는 대목에서 늙은 신사가 경험하게 되는 하룻밤의 일탈과 그로인한 미래의 변모 가능성은 쥬코의 어긋남과 변모 역시를 비유하고 있다. 동기가 부여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쥬코의 일탈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연속 살인의 행위로 변하게 된다.
존재의 반대는 비관이 아니라 피로, 무기력이다. 피로와 무기력을 합치면 권태가 된다. 그것은 평범하고, 통속적이다. 권태는 존재를 가볍게 비웃고 있다. 2장에 나오는 술에 취한 아버지, 10장의 인질장면에 나오는 주위 사람들과 9장의 파출소장 등이 그러한 인물들이다. 그들 역시 존재를 포기한 것이다. 이들은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목적에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놀고 있다. 놀이의 실재란 본질적으로 비실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심지어 자신의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다수결에 편입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사는 현대인을 표상한다.
콜테서의 극 담화는 표현 기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물들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말로써 낱낱히 고백하는 힘을 가졌다. 바로 로베르토 쥬코가 지닌 비극성은 단순한 비극적 상황이 아니라, 그 비극적 상황에도 그 비극을 끝까지 말하는 등장 인물들에게 엿볼 수 있다. 로베르토 쥬코에서 대화를 가장한 독백을 행하는 형사, 늙은 신사, 쥬코 등은 화자와 청자가 같은 성찰적 담화를 사용한다. 화자보다 청자에 집중하는 여자아이의 언니나 오빠의 독백의 경우에도 표현적 기능은 독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들에게 여자아이의 불행이란 곧 자신과 가족의 불행이다. 독백을 통해 여자아이에 대한 관심과 여자아이가 순결을 잃음으로써 닥친 불행을 말하면서 동시에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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