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부:리뷰·창작비평·비교/16_내삶속정경사

쌍문동 갈릴리교회 (전태일, 당시 쌍문동 208번지)

90' 2019. 12. 5. 21:17

http://ny.kukminusa.com/news/view.php?gisa_id=0924027090

 

[한국기독역사여행] 이재민 동네에 지핀 복음의 불... 박현숙 장로와 쌍문동 갈릴리교회

서울 쌍문동 갈릴리교회 교인들은 겸손하고 친절했다. 서로가 깍듯이 인사했으며 낯선 이에게도 환한 얼굴로 안내했다.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이 험해지고 파편화되면서 교회공동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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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박 장로가 교회 건축 기금을 쾌척했다. 그 기금으로 ‘쌍문동 208번지’에 오늘날 갈릴리교회가 세워졌다. 이재민 이소선과 그의 아들 전태일도 갈릴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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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서울 쌍문동 208번지 창현교회(현 갈릴리교회)에서는 노동운동가이자 이 교회 교인이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사진)의 장례예배가 열렸다. 누구보다 사람과 예수를 사랑했던 전태일 형제라며 사람들이 흐느꼈다.

전태일은 남산 화재 이재민으로 쌍문동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에게 교회는 유일한 희망이자 안식처였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충격적 죽음을 신앙으로 극복했고 훗날 이 교회 권사가 됐다.

전태일은 그해 11월 13일 서울 청계천6가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로 “노동3권 보장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여공들이 밥을 굶으면 차비로 풀빵을 사다주고 쌍문동 집까지 2∼3시간을 걸어 다녔다. 그의 죽음으로 한국 노동자의 현실은 크게 개선됐다. 그가 죽고 교회와 집이 있던 쌍문동 208번지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됐다.

갈릴리교회는 박현숙·전태일의 삶과 신앙을 아카이브화하는 등 사료 정리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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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사에서 전태삼씨 말씀에 따르면, 정확히는 지금 사는 곳에서도 가깝고, 바로 전 아파트에서도 바로 근처인 삼익 세라믹 아파트 112동 뒤가 재개발되기 전 전태일의 옛 집터라고 한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재개발된 삼익 아파트에 사신다고. 갈릴리 교회는 이 근처에 터를 잡았다. 

(그나저나 거의 십년은 된 이야기지만 여러 집회 등을 다니면서 전태삼님을 꽤 많이 뵜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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