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uty in the dream 625

벤야민을 내가 선택하며.

1.벤야민을 덕질하면서 그 이어질 학자들: 벤야민, 아감벤, 데리다, 하이데거, 브레히트, 카프카, 보들레르, 니체, 맑스, 푸코, 프란츠파농, 프롬, 프랑크푸르트학파, 까뮈, 바울 및 신약성서, 벨훅스. 문학에서는 카프카와 보들레르, 브레히트를 많이 참고할 것 같다. 2.벤야민 덕질이 좋은 것은, 그가 우선 비평가라는 것이다. 내 관심사로도 문학철학역사미학정치를 잇는 플랫폼(?) 허브(?)로서 벤야민은 하나를 팔 학자를 정할 때에 좋은 선택지이다. 3.잊혀졌던, 혹은 기록되지 않은 그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에서 복구하는 것이 벤야민, 그리고 나의 몫이다.난 역사가 진보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차라리 과거 속의 이야기를 복원시키는 것이 낫다. 이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가? 끝없는 음악적 영감....역사, 철..

자캠 아감벤 강의 1강

자캠 아감벤 강의 1강2016-01-11 월요일http://www.freecamp.kr/2016winteraudio04 [강의에 들어가며]우선 이 강의는 아감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인지 정원이 꽉 찼다. 같이 듣는 경주님은 이미 아감벤에 대한 '유행'은 좀 지나지 않았나? 라고 말하셨다. 그래도 워낙에 현대 철학에서는 중요한 사람인 것일까? 나는 아직 모르니까.아감벤을 여섯강에서 소개하려고 하니 어떤 입문서를 다루면 좋을지 고심하다가 알렉스 머레이의 원서를 교재로 택하셨다고 한다. 알렉스 머레이의 책을 검토하면서 '좋은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아감벤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본인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건 바로 아감벤에게 있어 벤야민의 위치 혹은 하이데거의 위치였다고 한다. 머레이의 경..

Mr.Children - Tomorrow Never Knows

이에루고토 나이 이타미나라, 잇소, 히키즈레테.스코시쿠라이 하미다시닷떼 이이사, 유메오 에가코오.다레카노 타메니 이킷데 미닷테... Tomorrow never knows. 코코로노마마 보쿠와 유쿠노사, 다레모 시루코토나이 아시따에.. 낫지 않는 상처라면 차라리 끌어 안고, 누군갈 위해 살아본다해도 몰라.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나가는거야 아무도 모르는 내일로... 그래 맞아 내일은 아무도 몰라과거보다 못한 내일이라면그냥 과거 안에 살겠어

최근 내 종교에 관하여.

요즘 종교에 관심이 많다. 히브리즘적인 헌신의 신앙이라기보다는, 지적인 호기심이 더 크다. 가톨릭에서 견진성사를 받고, 만약에 정말 이 뜻대로 산다면 프란시스코회(평신도로서)가 되고 싶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첫째로는 매주 안식일인 주일에도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 나일롱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개신교에 관한 관심때문이다. 즉, 매주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고 했을 때 그것이 가톨릭 교회가 아니라 개신교 교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내 종교관이 자리잡지 않았다. 우선은 섬돌이나 명동 향린교회, 낙산교회(김희헌목사) 등에 가봐서 어떤지 느끼고 싶다. 그저 언제쯤 가보면 좋겠다에서 좀 더 적극적인 의지로 바뀐 계기는 천주교 용어로는 '공소'에 대해서다. 가톨릭은 보편교회인 만큼 평신..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6. 신약성경 정경목록

1세기 중반부터 신약성경이 생겨나기 시작함. 최초의 신약성경은 테살로니카 전서. 50-51년 경, 바오로 사도가 씀. 그 후에 복음서들이 쓰임. 마르코 복음 70년 경, 루카 마태오 복음은 8-90년 경. 그러니까 복음서보다 바오로 사도의 친필 편지가 먼저 쓰임.1세기 말에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봉독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간단히 해설한 것이 주일 미사의 강론이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가 특별히 존중받은 이유는 구약성서는 간접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반면, 바오로 사도의 편지와 복음서는 예수를 직접 증언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성경은 유다인들이 사용하고 초대 교회가 사용하던 구약 성경과 차츰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1세기 후반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9. 성서의 장절 표시, 셀라

원래 성경이 처음부터 장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엔 없었고 책 이름만 있었다. 12세기에 처음 성서의 장을 구분한 사람은 켄터버리의 렌턴 대주교다. 렌턴 주교는 라틴어 불가타 성서에 장 표시만 했었다. 그 다음 히브리어 장표시는 더 나중에 이뤄졌다. 15세기 라탄이라는 사람이 히브리어 성경에 장 표시를 했다.절 표시는 더 후대에 이루어졌다. 프랑스 빠리의 인쇄업자 에티엔느가 1551년 신약성서에 처음으로 장절 표시를 했다. 빠리에서 리옹으로 여행을 가던 중에 이미 구분되었던 신약의 장에 절표시를 했다고 한다. 1558년 불가타 성서에 장과 절을 표시한 성서가 처음으로 출판됨. 예를 들면 시편 50편을 볼 때 괄호 안의 49는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장표시다. 그리고 '셀라'는 잠시 쉬었다 숨을 고르고..

이중섭 신부의 성경 강의 - 8. 주요 성서 텍스트

1. 히브리어 마소라 텍스트, TM기원 후 70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티토 장군, 후에 로마제국의 왕이 됨) 이스라엘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성전의 주축으로서 썼던 벽만 남겨두었다. 그것이 현재의 통곡의 벽. 로마에 항거하는 민족들은 다 이렇게 파괴당할 것이라는 듯으로 남겨둔 벽. 그 때 예루살렘의 성전들이 파괴되고 사제직도 없어지고, 말씀 뿐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학자들, 성서학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을 유지해나간다. 성서학자들은 처음에는 예루살렘 서쪽에서 성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동안의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기록하고 전해오는 성서 사본들을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은 갈릴레아 호숫가의 도시 티베리아로 옮겨가서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티베리아 학..